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로마 가톨릭의 대성당입니다. ‘눈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으로, 로마에 있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성 바오로 성당과 함께 4대 성당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술 후원을 흔히 메세나 운동이라고 합니다. 메세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관료였고 예술 후원가이기도 했던 마에케나스(기원전 69년 탄생)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마에케나스의 집이 바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있는 에스킬리노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는 예술가와 문인들에게 자신의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했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로마에서는 빈곤층이 모여 사는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녹지대도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과 티투스 목욕탕 유적 인근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이 로마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은 다름 아닌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이 성당 이외에도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 모세상이 있는 성 베드로 사슬 성당이 있어 이 작품을 보려는 이들로 항상 붐빕니다. 성당 앞 광장에는 포룸에 있는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의 8개의 기둥 중 유일하게 남은 기둥을 1614년에 이곳으로 가져와 세워 놓았습니다. 기둥 위에는 성모자상이 올라가 있는데, 이 조각은 1615년 베르텔로가 만든 작품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325년 8월 5일 교황 리베리우스 꿈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가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건축하라고 계시했다고 합니다. 리베리우스가 생각하기에 여름에 어떻게 눈이 내릴지 의심했는데, 다음날 정말로 한여름에 에스퀼리노 언덕에 하얗게 눈이 내린 것을 발견하여, 그곳에 성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입니다. 이런 사연 때문에 통칭 '눈의 산타마리아'라고도 불립니다.
위치상으로는 테르미니역과 가까운 로마 시내에 자리잡고 있어서 테르미니역에서 카부르 거리를 따라 도보로 10~15분 정도 걸으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당은 로마에 있기는 하지만 소유권은 로마가 아니라 바티칸 시국에 있습니다. 1929년 바티칸 시국이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주변 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을 당시, "성 베드로 성당과 그 주변 및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로 한다”는 조항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3세(재위 432~440년)가 5세기에 건축해 성모 마리아를 위해 봉헌한 성당이며, 뒤이은 교황들이 지속적인 증개축을 수행했습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당중에서 각 시대의 특징적인 건축 양식들이 가장 조화롭게 어울린 성당으로 손꼽히며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성당에는 중세에 건설된 로마에서 가장 높은 75m의 종탑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때에는 천장이 개축되었고 바로크 때에는 두 개의 궁륭이 장식되었습니다. 18세기 들어서는 고전 양식과 보로미니의 바로크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페르디난도 푸가가 정면 파사드를 설계했습니다. 현관에는 대성당의 후원자였던 스페인 왕 필리페 4세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내부의 장식으로는 고대 로마 신전에서 가져온 대리석주와 콜롬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사용한 천장화가 흥미롭습니다.
성당 현관 왼쪽에 자리 잡은 예배당을 로지아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13세기 후반 필리포 루수티가 예수님을 비롯한 천사와 기타 성자를 묘사한 모자이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단에는 4세기 후반 교황 리베리우스 1세가 이곳에 성당을 헌당하게 된 일화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섬세한 선, 화려한 의상의 인물들, 정교하게 묘사된 원근법 등은 중세 최대의 화가들이었던 치마부에와 조토로 대표되는 피렌체 화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성당 내부도 여러 차례 개보수 작업을 거쳤습니다. 13세기 말 니콜라우스 4세가 성가대석을 확장했고, 15세기 중반에는 측랑에 르네상스 양식의 궁륭 천장을 씌웠습니다. 대성당 내부는 완벽한 비율에 따라 지어졌으며, 이오니아식 기둥이 두 개의 열을 형성하고 있는 초기 기독교 건축의 대표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당에는 여러 점의 모자이크가 있지만 성당 뒷부분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가장 걸작입니다. 이 놀라운 모자이크 작품은 5세기에 제작된 것이지만, 13세기 말 교황 니콜라우스 4세가 후진을 개축하면서 야코보 토리티가 다시 제작한 것입니다. 모든 인물은 13세기 토리티가 만든 것이고, 새, 나뭇잎, 소용돌이 장식만이 5세기 모자이크 작품입니다.
성당 천장은 요철형의 격자로 16세기 초,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와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 출신의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게 증정한 콜럼버스가 페루에서 가져온 첫 번째 금괴를 녹여 그 금으로 금박을 입혔다고 합니다. 천장의 중앙 격자에 들어가 있는 장미꽃 문양은 그 지름이 1m에 달합니다.
성당 우측 측랑에는, 콘살보 로드리게스 추기경(Cardinal Consalvo Rodriguez)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묘입니다.
식스투스 5세 예배실(Cappella di Sisto Quinto)은 5년이라는 통치기간 동안 많은 건축 공사를 단행하였던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이름을 딴 예배실입니다. 교황이 가장 총애하였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가 예배실의 설계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리스식 십자형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돔 천장으로 덮여 있습니다. 예배실에는 교황 식스투스 5세와 피우스 5세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례당은 바로크 시대 건축가 플라미니오 폰지오가 설계했고, 반암으로 만든 세례반은 19세기에 발라디에 가 장식했습니다. 제단의 성모 승천 부조는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작품입니다.
좌측 측랑에는 두 개의 아름다운 예배실이 자리합니다.
스포르자 예배실은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건축하였고, 설계는 미켈란젤로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올리나 예배실은 교황 바오로 5세가 속했던 보르게세 가에서 그 명칭을 따 보르게세 예배실이라고도 부릅니다. 설계는 식스투스 5세 예배실과 거의 동일하나 장식이 화려합니다. 제단은 벽옥, 청금석, 마노, 자수정 등으로 장식되어 매우 화려합니다. 제단 위쪽에는 비잔틴 스타일의 성 모자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단화 상단에는 대성당의 건축 일화를 그린 스테파노 마데르노의 패널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8세와 바오로 5세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