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상 조르제 성│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리스본 언덕의 요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그 언덕 위에서 붉은 지붕과 태양을 내려다보는 고요한 요새가 있습니다. 바로 **상 조르제 성(Castelo de São Jorge)**입니다. 리스본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포르투갈 천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시간의 보고입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인류가 거주해온 이 언덕에서,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 로마인과 서고트족, 그리고 무어인들이 차례로 이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11세기 무어인들이 요새로 건설한 이곳은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포르투갈 왕실과 도시 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1147년 아폰수 엔히케스 왕이 이끄는 기독교 십자군이 마침내 이 성을 되찾으며 포르투갈 건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특히 이 역사적 순간에는 마르팀 모니즈(Martim Moniz)라는 포르투갈 기사의 전설적인 희생이 깃들어 있습니다. 4개월간 계속된 치열한 공성전 중, 그는 무어인들이 성문을 닫으려는 순간 자신의 몸을 문틈에 끼워 넣어 동료 기사들이 성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고, 이 영웅적 희생으로 성의 함락을 이끌어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의 북쪽 문은 '마르팀 모니즈의 문'이라 불리며, 리스본 시내의 광장과 지하철역 또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성의 이름은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인 성 조르지(São Jorge)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1147년 리스본 공성전에서 포르투갈을 도운 북유럽 십자군들과의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4세기 영국과의 동맹을 기념해 붙여진 이 이름은, 이후 포르투갈이 기독교 왕국으로 강화되는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 발견 후 돌아와 마누엘 1세를 알현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1755년의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1940년대 대규모 복원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대대적인 재정비를 거쳐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성은 도시의 알파마 지구 정상에 자리잡고 있어, 산책하며 오르는 길목마다 리스본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 내부에는 11개의 망루와 견고한 성벽, 고고학 유적지, 그리고 중세 왕궁의 유적이 어우러져 있으며, 중세 유물 전시관과 옛 왕궁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몇 곳의 탑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어 성벽 위를 걷는 체험도 가능합니다. 울리세스 탑에 설치된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리스본 전경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됩니다. 성 곳곳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공작새들과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은 방문객들에게 평화로운 휴식을 선사하며, 여름철 성 내부의 그늘진 돌길은 더위 속에서도 특별한 안식을 제공합니다. 특히 해 질 무렵, 성의 전망대에 서면 테주강과 리스본 전경이 눈부시게 펼쳐지며 많은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합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리스본의 테라코타 지붕들과 테주강의 파노라마는 그 어떤 전망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줍니다.
방문은 연중 가능하지만, 봄과 가을인 4월 - 6월 혹은 9월 - 10월 무렵이 가장 쾌적합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성인 기준 15유로의 입장료로 이 모든 역사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트램 28번을 타고 알파마 지구의 정취를 만끽한 후, 포르타스 두 솔(Portas do Sol) 정류장에서 내려 성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도 리스본 여행의 낭만을 더해줍니다. 하지만 성 입구까지 직접 가고 싶다면 737번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입니다. 알파마 지구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여정 자체도 리스본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역사와 풍경, 도시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상 조르제 성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리스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조용히 이야기하는 공간이자, 포르투갈 천년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