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를 대표하는 고유 디저트 판포르테(Panforte)
판포르테(Panforte)는 직역하면 '강한(forte) 빵(pane)'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강하다'는 의미는 맛이 강렬하고 보존성이 뛰어나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꿀, 설탕, 밀가루를 베이스로 하여 아몬드, 헤이즐넛 등의 견과류와 오렌지 껍질, 레몬 껍질 같은 당절임 과일(Candied Fruit)을 듬뿍 넣고, 후추, 시나몬, 정향 등 귀한 향신료를 섞어 구워낸 납작한 케이크 형태의 디저트입니다. 겉면은 대개 얇은 전병(Host)으로 감싸져 있으며 위에는 슈가파우더가 뿌려집니다.
판포르테의 기원은 12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시에나의 수도원에서는 '파네 멜라토(Pane Melato, 꿀빵)'라는 음식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과일을 넣다 보니 수분 때문에 쉽게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과일을 설탕에 절이고 강한 향신료를 추가하면서 오늘날의 판포르테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향신료는 금만큼이나 귀했기에 판포르테는 귀족이나 성직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습니다. 또한 영양가가 높고 보존성이 좋아 십자군 전쟁에 나가는 기사들이 비상식량으로 지참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흰색 판포르테는 1879년 이탈리아의 마르게리타 왕비가 시에나를 방문했을 때 탄생했습니다. 기존의 검고 강렬한 맛 대신, 왕비의 입맛에 맞춰 후추를 줄이고 바닐라와 슈가파우더를 사용해 부드럽게 만든 것이 '판포르테 마르게리타'이며, 현재 시에나를 대표하는 표준 레시피가 되었습니다.
판포르테 주요 브랜드
■ Pasticceria Nannini(난니니) : 시에나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 중 하나로, 정통적인 수제 판포르테의 맛을 유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입니다. 1900년대 초에 설립된 이 명품 제과점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판포르테를 제조하며, 전 세계로 수출할 만큼 최고의 명성을 자랑합니다. 특히 고품질 견과류와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 깊고 진한 맛을 구현합니다. 리치아렐리도 매우 인기 있습니다.
■ Sapori(사포리) : 1832년 약사인 비르질리오 사포리가 설립한 브랜드로, 판포르테의 상업적 대중화와 품질 표준화를 이끈 역사적인 기업입니다.
■ Masoni(마조니) :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전통적인 구리 솥 공법을 고수하는 고급 브랜드입니다.
■ Pasticceria Picci(피치) : 가족 경영의 소규모 베이커리지만, 수제 재료와 손맛으로 유명합니다. 판포르테의 향신료 밸런스와 리치아렐리의 부드러움이 잘 살아 있어 지역 주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Pasticceria La Dolce Vita(라 돌체 비타) : 혁신적인 레시피와 전통의 조화를 추구하는 곳으로, 전통 판포르테 및 리치아렐리 외에도 여러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구름처럼 부드러운 아몬드 쿠키, 리치아렐리(Ricciarelli)
리치아렐리(Ricciarelli)는 아몬드 가루, 설탕, 달걀흰자를 주원료로 하는 시에나의 전통 쿠키입니다. 마지팬(Marzipan)과 유사한 질감을 가졌으나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매우 촉촉하며 쫀득한 것이 특징입니다. 타원형 또는 마름모꼴 모양에 표면이 자연스럽게 갈라져 있으며, 그 위에 슈가파우더가 소복이 내려앉은 모습이 흡사 시에나의 겨울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2010년 이탈리아 제과류 중 최초로 EU의 PGI(IGP, 지리적 표시 보호) 인증을 받았습니다.
리치아렐리의 기원은 14세기 시에나 귀족들의 연회 테이블로 올라갑니다. 아몬드 기반의 과자는 본래 아랍 국가들에서 유래되어 십자군 전쟁 시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시에나는 당시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이러한 이국적인 재료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리치아렐리(리차렐리)'라는 이름은 시에나의 기사 리차르도 다 살루스티오(Ricciardetto della Gherardesca)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올 때 동방에서 보았던 곱슬곱슬한 신발의 앞코 모양을 본떠 과자를 만들라고 주문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리치아렐리는 초기에는 약국(Spezierie)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약사들은 향신료와 귀한 식재료를 다루는 유일한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시에나의 오래된 제과점들은 과거 약국에서 사용하던 것과 유사한 배합비와 정성을 고수합니다.
리치아렐리 주요 브랜드
■ Fior(피오레) : 1827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브랜드로, 리치아렐리의 정석이라 불릴 만큼 엄격한 원재료 관리를 자랑합니다.
■ Pasticceria Bini(비니) : 시에나 현지인들이 가장 아끼는 로컬 맛집 중 하나로, 기계 생산이 아닌 전통적인 수제 방식을 고집하여 질감이 매우 섬세합니다. 오랜 역사와 함께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제품들을 제공하며, 시에나 방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입니다. 다양한 크기의 제품이 있어 선물용으로도 탁월합니다.
■ Marini(마리니) : 현대적인 패키징과 전통적인 맛을 결합하여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은 브랜드입니다.
과거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으나, 현재는 일 년 내내 시에나의 모든 제과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에나 사람들은 매년 7월과 8월에 열리는 경마 축제인 '팔리오(Palio di Siena)' 기간이나 연말연시에 이 디저트들을 나누며 도시의 승리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시에나를 방문한다면 좁은 골목길 사이로 풍겨오는, 달콤하고 알싸한 향기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 끝에서 만나는 판포르테와 리치아렐리 한 조각은, 수백 년 전 십자군 기사와 르네상스 귀족들이 느꼈던 그 감동을 동시대의 미각으로 재현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