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거닐던 골목, 2,500년을 품은 아테네의 심장 - 플라카에서 시간을 걷다
골목이 가르쳐주는 걷기의 속도
플라카 지구는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라는 표현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구역입니다. 아크로폴리스의 북쪽과 동쪽 사면을 감싸듯 이어지는 골목들이 한 번에 길을 내어주지 않아서, 걷는 속도 자체가 천천히 내려갑니다. 덕분에 여행자는 '어디를 봐야 하지'보다 '어떻게 걸어야 하지'로 마음이 이동합니다.
신타그마 광장과 모나스티라키 광장 사이에 자리한 이곳의 첫인상은 대개 작고 낮은 집들, 굽은 골목, 그리고 네오클래식 양식의 정갈한 창문과 발코니가 만들어내는 리듬입니다. 자갈길 사이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파스텔톤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고, 발코니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부겐빌레아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2층 발코니에 널려 있는 빨래, 대리석 계단 위에서 따스하게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현관 앞에 놓인 바질 화분 하나. 이 모든 것이 플라카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된 건물 사이로 지금의 생활이 흐르고 있는 살아있는 동네임을 증언합니다.
"신들의 동네(Neighborhood of the Gods)"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단순히 아크로폴리스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유만이 아닙니다.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고대 유적, 비잔틴 시대의 작은 교회들, 로마 기둥 파편, 그리고 발아래 깔린 고대 도시의 흔적들이 이곳을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지층
플라카는 신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비어본 적 없는 유럽 최고(最古)의 거주 지역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주거 구역 위에 형성된 이 동네는 비잔틴과 오스만 시대를 지나 근대 아테네가 도시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구시가지의 얼굴'이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서 걷다 보면 한쪽에는 작은 비잔틴 교회가 있고, 몇 걸음 옆에는 신고전주의 저택의 흔적이 있고, 또 다른 골목에서는 키클라데스 제도를 닮은 하얀 집들이 불쑥 나타납니다.
고대 아고라 유적 주변에 발달한 이 지구는 아테네가 어떤 역사적 격변을 겪든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4세기 말 기독교 부흥과 함께 이교 의식이 금지되었고,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행정 및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1826년 그리스 독립 전쟁 당시 격렬한 전투로 주민들이 잠시 떠났지만, 오토 1세 통치 초기에 다시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때 귀족 가문, 장인, 전문직, 군인 등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게 되었고, 19세기 말까지 상당한 규모의 알바니아 공동체가 형성되어 자체 법정에서 알바니아어를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이 들어서며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지역 주민, 건축가, 학자들이 힘을 합쳐 동네를 되살렸습니다. 시끄러운 디스코와 저급한 여관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바뀌었으며, 오래된 건물들은 원형에 맞게 복원되었습니다. 플라카는 아테네에서 유일하게 모든 공공시설(상하수도, 전기, 케이블 TV, 전화, 인터넷)이 지하 터널에 매설된 지역입니다. 덕분에 건물 외벽에 전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아테네'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
플라카라는 이름에는 여러 설이 공존합니다. 한 가지로 딱 잘라 말하기보다, 여러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고 보는 편이 정직합니다. 언어학자 카랄람포스 시메오니데스(2010)는 이 이름이 그리스 전역에서 발견되는 중세 및 현대 그리스 지명으로, 1089년부터 기록에 등장하며 아테네의 경우 고대 명판이나 대리석이 있던 장소를 의미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알렉산드레이아스 교회 근처에서 큰 명판이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설득력 있는 설은 아르바니테(알바니아어와 그리스어의 혼합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16세기 이 지역에 정착한 아르바니테인들이 "플리악 아테나(Pliak Athena)", 즉 "오래된 아테네"라 불렀고, 이것이 점차 플라카로 정착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한 동네의 이름에 '기억(Old Athens)'과 '돌(플라카)'이 함께 매달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17세기 중반까지 플라카라는 명칭은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주변만을 지칭했으나, 1834년 이후 점차 확대되어 현재의 마크리기아니 거리와 고대 아고라 사이 전체 지역을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현지인들이 알리코쿠, 콘티토, 칸딜리, 또는 지역 교회 이름으로 이 일대를 불렀습니다.
데모스테네스의 등불과 바이런 경의 시
플라카 남쪽 끝, 하드리아누스 개선문과 거의 수직을 이루는 위치에 리시크라테스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기원전 334년 부유한 후원자 리시크라테스가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열린 합창 경연 대회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 대리석 탑은, 건축물 외관에 코린트 양식을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에는 이처럼 극장 후원자들이 세운 기념비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이 기념비입니다.
중세 말 카푸친 수도원이 이 부지를 소유하게 되면서 기념비는 수도원에 편입되었고, 카톨릭 수도원장의 저항 덕분에 악명 높은 엘긴 경의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890년 수도원이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기념비는 살아남았고, 지금은 트리포돈 거리의 작은 정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플라카 주민들은 지금도 이 기념비를 "데모스테네스의 등불(Lantern of Demosthenes)"이라 부릅니다.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등불을 사용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기념비 주변 광장의 그늘진 카페는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는데, 19세기 초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Lord Byron)이 이곳에서 서사시 "칠드 해롤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의 일부를 집필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아나피 장인들이 지은 섬마을
플라카 북쪽, 아크로폴리스 바위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곳에는 하얀 큐브 형태의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아나피오티카(Anafiotika) 구역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키클라데스 제도의 어느 섬마을로 순간이동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하얀 회벽에 파란 문과 셔터, 좁디좁은 골목길, 테라코타 지붕, 그리고 벽을 타고 오르는 재스민 덩굴까지, 모든 것이 아테네 시내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아나피오티카는 플라카의 표정 가운데서도 가장 "뜻밖의 장면"을 만들어 주는 곳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 독특한 마을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토 왕이 아테네를 근대 국가의 수도로 재건하기 위해 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키클라데스의 작은 섬 아나피에서 숙련된 석공들이 대거 아테네로 이주했습니다. 궁전과 신고전주의 건물들을 짓던 이들에게는 머물 곳이 없었고, 그들은 몰래 아크로폴리스 바위 그늘에 고향 스타일의 집들을 지었습니다. 일부는 하룻밤 사이에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플라카 주민들은 처음에는 이들이 마음대로 집을 짓는 것에 분개했지만, 당국은 왕의 허락을 받았다는 핑계로 묵인했고, 결국 이 특별한 마을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나피오티카에는 거리 이름이 없고 번호만 있으며, 빨랫줄에 널린 빨래와 레이스 커튼, 나무를 태우는 벽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장소가 인물보다 앞서는 동네
플라카를 대표하는 '유명 인물'을 딱 한 명으로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이 지역은 "인물보다 장소가 앞서는" 유형에 가깝습니다. 다만 플라카 인근에는 로마 시대 아테네의 흔적이 촘촘히 남아 있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와 연결되는 유산들이 자연스럽게 동선 안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재위 기간(117년~138년) 동안 아테네는 새로운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했고, 하드리아누스 도서관과 개선문 등 그의 유산이 플라카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18세기에는 그리스 귀족 베니젤로스(Benizelos) 가문이 이곳에 거주했습니다. 성 필로테이(Saint Philothei)가 이 가문 출신이며, 베니젤로스 저택은 현재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집으로 박물관이 되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19세기 초 바이런 경이 리시크라테스 광장에서 시를 쓰며 플라카에 낭만주의 시인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골목에서 펼쳐지는 오감의 여정
현장에서의 체험은 굉장히 감각적입니다. 낮에는 햇빛이 돌바닥과 벽면에 반사되어 골목이 더 밝아 보이고, 저녁이 되면 조명이 켜진 작은 가게들과 카페가 동네의 온도를 살짝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골목이 금세 붐빌 수 있지만, 한두 블록만 방향을 틀어도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아드리아누 거리(Adrianou Street)는 플라카의 주축으로, 상부 플라카(아노 플라카)와 하부 플라카(카토 플라카)를 나눕니다. 하지만 정작 플라카의 진짜 매력은 이 중심가에서 한두 블록만 벗어나면 시작됩니다. 인파가 확 줄어들고, 조용한 골목에서는 작은 비잔틴 교회의 종소리가 맑게 들려옵니다.
아드리아누 거리와 트리포돈 거리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입니다. 발굴 결과 이 거리들이 고대와 정확히 같은 배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트리포돈은 원래 디오니소스 극장과 고대 아고라를 연결하던 길로, 고대 그리스의 "명예의 거리" 역할을 했습니다.
키다티나이온 거리(Kydathinaion Street)는 철제 발코니와 나무 셔터가 달린 신고전주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 거리 한복판에 있는 브레토스(Brettos)는 1909년부터 운영되어 온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로, 안으로 들어서면 벽 전체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리큐어 병들이 무지개처럼 빛나는 장관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생산된 우조와 치푸로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플라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걷다 보면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거리 수준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 11세기 비잔틴 교회, 신고전주의 건물 외벽에 박혀 있는 로마 시대 기둥 파편, 오렌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작은 광장. 베니젤로스 저택은 18세기에 지어진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집으로, 1층의 거친 돌 파사드와 작지만 이중으로 된 창문은 산악 지방 양식에 가깝고, 내부 중정을 둘러싼 아치형 회랑은 비잔틴 및 후기 비잔틴 교회 건축과 오스만 건축의 내향적이고 방어적인 디자인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저녁이 되면 타베르나와 메제도폴리오(작은 접시 요리를 나눠 먹는 전통 선술집)의 야외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고, 곳곳에서 전통 음악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아나피오티카로 이어지는 계단식 거리에 자리한 아네파니(Anefani)에서는 매일 저녁 라이브 음악과 함께 구운 문어, 사가나키(튀긴 치즈), 전통 메제를 즐길 수 있으며, 테이블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은 그 자체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됩니다.
계절이 만드는 플라카의 다른 얼굴
계절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3월 - 5월 사이, 그리고 9월 - 10월까지가 방문하기에 가장 이상적한 시기입니다. 날씨가 온화하고 쾌적하며,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계단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습니다. 봄에는 부겐빌레아와 재스민이 만개하고, 오렌지 나무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납니다. 가을에는 맑고 투명한 빛 속에서 신고전주의 건물의 파스텔 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납니다.
6월 - 9월까지 여름 성수기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이 또한 플라카의 매력입니다. 아테네 특유의 강한 햇빛과 열기가 체감될 수 있어, 동네를 즐기는 시간대를 조금 더 이른 오전이나 해 질 무렵으로 잡는 편이 편안할 때가 있습니다. 저녁 8시가 되면 타베르나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고, 거리 음악가들의 연주가 시작되며, 키다티나이온 광장에서는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11월 - 2월에는 공기가 맑고 햇빛이 부드러워 골목의 질감이 차분하게 살아나며, 오래 머물기 좋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관광객이 적어 한적하고 조용한 플라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비 온 후 자갈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지만, 맑은 겨울 오후의 햇살 속에서 전통 카페네이온(kafeneion)에 앉아 진한 그리스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여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플라카를 제대로 즐기는 실용 정보
플라카는 24시간 개방된 공공 지역으로, 언제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신타그마(Syntagma, 2호선·3호선),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 1호선·3호선), 아크로폴리(Akropoli, 2호선)이며, 모두 도보 5~10분 거리입니다. 공항에서 오는 경우 3호선(블루 라인)을 타고 신타그마나 모나스티라키에서 내리면 됩니다.
전체가 보행자 구역이거나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있어, 편안한 신발은 필수입니다. 자갈길과 계단이 많으니 운동화나 플랫슈즈를 권장합니다. 플라카의 진짜 매력은 계획 없이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에 있으므로, 하루 일정을 여유 있게 잡고 천천히 거니는 것이 좋습니다.
주요 거리인 아드리아누와 키다티나이온에는 기념품 가게, 보석 상점, 전통 공예품점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정말 독특한 물건을 찾는다면 한두 블록 벗어난 작은 골목의 장인 작업실을 찾아보세요. 더 그릭 숍(The Greek Shop, Adrianoy 120)은 그리스 각지에서 생산된 올리브 오일, 올리브 비누, 말린 무화과, 오레가노, 전통 과자와 함께 우조와 치푸로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식사는 관광객이 몰리는 중심가보다는 한 블록 안쪽의 타베르나를 추천합니다. 글리키스(Glykis)는 전통 카페네이온 분위기에서 메제, 케프테데스(미트볼), 크레타산 그라비에라 치즈를 맛볼 수 있고, 신고전주의 건물에 자리한 리라(Lyra)는 팜투테이블 철학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리스 요리를 선보입니다.
플라카 내에는 그리스 민속 예술 박물관(Museum of Greek Folk Art), 민속 악기 박물관(Folk Instruments Museum), 카넬로풀로스 박물관(Canellopoulos Museum), 프리시라스 박물관(Frissiras Museum) 등 소규모이지만 알찬 박물관들이 있습니다. 각 박물관은 그리스 문화의 덜 알려진 측면을 조명하며,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압도적인 규모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한결 여유로운 문화 체험을 제공합니다.
은막 위에 담긴 플라카의 풍경
플라카는 수많은 그리스 영화와 국제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비고 모텐슨과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스릴러 영화 "The Two Faces of January (2014)"가 있으며, 플라카와 모나스티라키의 골목길,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의 실제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감독 호세인 아미니는 플라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활용해 테세우스와 오이디푸스의 신화적 테마를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
니아 바달로스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My Life in Ruins (2009)"는 플라카, 파르테논, 아크로폴리스 등 아테네의 상징적 명소에서 촬영되었고,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Before Midnight (2013)"도 플라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로맨스 영화의 배경으로 완벽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외에도 "Suntan (2016)"은 플라카의 활기찬 거리와 그림 같은 해안선을, "The Trip to Greece (2020)"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요리 로드 트립을 통해 플라카를 포함한 아테네의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들은 플라카의 신고전주의 건축물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균형을 찾는 동네
플라카는 관광 수요와 단기 임대 확대로 인해 '거주지로서의 보존'이 중요한 이슈로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플라카는 아름다움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동네이기도 합니다. 모든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엄격한 보존 규정이 적용되며, 광고판이 제한되고 나이트클럽은 소음 공해 방지를 위해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늘날 플라카는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이자 현지인들의 삶이 계속되는 진짜 동네로 남아 있습니다. 낮에는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지만, 이른 아침 8시 이전에 방문하면 빵집에서 갓 구운 쿠루리(참깨 빵)를 사 들고 출근하는 현지인들, 대리석 계단을 물청소하는 가게 주인들, 작은 교회에 꽃을 바치러 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머무는 골목에서
플라카의 매력은 "명소를 찍고 끝"이 아니라,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또 멈추는 사이에 천천히 쌓입니다. 가장 아름답게 즐기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목적지를 너무 많이 정하지 않고" 골목 하나를 천천히 완주해 보는 겁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 감각을 잃게 됩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파르테논의 기둥, 자갈길에 새겨진 고대 바퀴 자국, 11세기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타베르나에서 흘러나오는 부주키(그리스 전통 현악기) 선율.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이 공간에서는,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걸으며 철학을 논하던 그 거리 위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아크로폴리스가 거대한 상징으로 도시를 붙잡고 있다면, 플라카는 그 상징 아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리시크라테스 광장의 카페에 앉아 바이런 경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브레토스에서 한 잔의 우조를 마시며, 아나피오티카의 좁은 계단을 올라 노을 지는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는 것. 이 모든 순간이 플라카에서만 가능한, 시간을 초월한 여행입니다.
플라카는 서두르면 놓치는 곳입니다. 계획표를 내려놓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세요. 골목 끝에서 만나는 작은 광장, 계단 위에서 마주친 고양이, 발코니에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 나무 그늘 아래 체스를 두는 노인들. 이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플라카의 진짜 얼굴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오면, 아테네는 유적의 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의 도시로 기억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