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부다 성 - 도나우 강 위의 역사와 예술
도나우강 서편 언덕 위, 부다페스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부다 왕궁(Buda Castle)은 헝가리 왕정의 찬란했던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서 깊은 성채입니다. 성곽 언덕(Várhegy) 남쪽 끝자락에 우뚝 솟은 이 웅장한 궁전 복합체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헝가리 천년 역사의 산증인이며, 198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3세기 중엽,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벨라 4세가 부다 언덕 위에 건설을 시작하며 그 역사가 열린 이곳은 이후 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전쟁과 복원, 재건을 거쳐 오늘날의 장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247년 ~ 1265년 사이 벨라 4세 왕(King Béla IV)이 몽골 침입에 맞서 요새를 건설한 것이 시작이었으며, 1241년 ~ 1242년 몽골군의 파괴적인 침입으로 헝가리 전역이 폐허가 된 후, 미래의 침입에 대비해 다뉴브 강 서안의 언덕에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그가 '제2의 건국왕'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4세기에는 루이 1세의 동생인 슬라보니아 공작 스테판이 현재 궁전의 가장 오래된 부분을 건설했으며, 이때 세워진 성채의 중심탑은 '이슈트반 탑'이라 불렸습니다. 15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지기스문트 왕은 궁전을 대폭 확장하고 요새를 강화하여 중세 후기 유럽 최대 규모의 고딕 양식 궁전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15세기, 마티아스 1세(Mátyás király) 코르비누스 시대는 이곳이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맞았던 시기로 평가되며, 부다 왕궁은 당시 유럽 르네상스 궁정의 정수로 기억됩니다.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왕은 1476년 나폴리의 베아트리체와 결혼한 후 이탈리아 인문학자, 예술가, 장인들을 부다로 불러들여 헝가리 수도를 알프스 북쪽 최초의 르네상스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황금 천장을 가진 두 개의 방 - 코르비니아나 도서관과 12별자리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통로가 있었으며, 궁전 정면은 후냐디 요한, 라슬로 후냐디, 마티아스 왕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석조 외벽과 조각된 창틀, 탑과 회랑을 따라 흐르는 현재의 모습은 1749년 ~ 1769년 사이 재건된 것입니다. 하지만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입으로 150여 년간 폐허가 되었다가, 1686년 합스부르크군이 부다를 탈환한 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이후 1944년 ~ 1945년 부다페스트 포위전에서 다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나, 공산주의 시대인 1950년대부터 단순화된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되어 오늘날의 웅장한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현재 왕궁 복합체는 A동부터 F동까지 6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자 안뜰(Lion Courtyard)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헝가리 국립미술관(Hungarian National Gallery),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Budapest History Museum), 그리고 세체니 국립도서관(Széchényi Library)이 자리하고 있어,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지적 탐험이 가능한 곳입니다.
헝가리 국립미술관은 4개 동에 걸쳐 10세기부터 현재까지의 헝가리 미술 작품 약 10만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미하이 문카치의 작품들과 중세 고딕 제단화 컬렉션이 유명합니다. 미술관에서는 헝가리 예술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갤러리 최고층에 위치한 돔 전망대는 부다페스트 시내와 다뉴브 강의 파노라마 뷰를 선사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56개의 계단만 오르면 되는 이 전망대에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11월 ~ 4월은 날씨에 따라 폐쇄).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에서는 고대 로마 시기부터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의 역사가 시간 순으로 정갈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최근 복원된 성 이슈트반 홀(St. Stephen's Hall)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관람 가능하며, 이 홀은 왕궁 내부에서 유일하게 원래 성의 모습으로 복원된 공간으로, 90분간의 투어를 통해 왕실의 웅장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서쪽 앞뜰에 위치한 마티아스 분수(Matthias Fountain)는 알라요시 스트로블의 네오 바로크 걸작으로, '부다페스트의 트레비 분수'라고도 불립니다.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왕이 이끄는 사냥 무리를 묘사한 이 기념비적인 분수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히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부다 왕궁은 매년 수많은 문화행사와 야외 콘서트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4월 ~ 10월) 사이에는 왕궁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도나우강 일몰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가장 깊이 울리는 순간으로 손꼽힙니다. 강 건너 페스트 지역의 국회의사당과 다뉴브의 불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어깨를 맞대고 선 듯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매년 8월 중순과 9월 초에는 와인 페스티벌과 공예 축제가 열려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축제 기간에는 특별한 입장 방식이 적용되니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왕궁 주변 정원과 안뜰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며, 내부 박물관들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됩니다(가을 ~ 겨울철은 오후 4시까지). 완만한 언덕을 따라 운행하는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올라가는 그 여정 자체도 여행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부다 왕궁은 세체니 체인 브리지와 부다바리 시클로(Castle Hill Funicular)로 연결되어 접근이 편리하며, 근처의 어부의 요새, 마티아스 교회와 함께 부다페스트 성곽 지구의 핵심을 이룹니다. 밤이 되면 조명에 비춰진 궁전과 체인 브리지가 다뉴브 강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하며, 이는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곳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살아 숨 쉬는 부다페스트의 영혼이자, 헝가리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