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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바르셀로나는 어떻게 골목을 되찾았나 — 탄소중립 도시 재설계의 실전 리포트

관리자 2026-04-23 17:33 조회 131

할머니들이 거리 한가운데서 파스타를 드시는 도시

 

시리즈 '도시를 다시 짓다' ① 바르셀로나 — 골목을 되찾은 도시, 그 길을 직접 걷다

 

1. 왜 바르셀로나인가

세계에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도시가 수백 개 있다. 그러나 선언과 실행 사이에는 늘 깊은 강이 흐른다. 그 강을 가장 멀리 건너간 도시 중 하나가 바르셀로나다.

 

면적 101㎢, 인구 160만. 유럽에서 가장 조밀한 도시 중 하나가 기후 위기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식은 특별하다. 이 도시에는 1859년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à)가 그린 격자형 가로망(Eixample)이 있다. 길과 블록이 정직하게 반복되는,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도시 설계의 원형이다. 그 격자 위에 19세기 설계자의 꿈은 20세기 내내 자동차에 점령당했다. 바르셀로나 공공 공간의 60%가 자동차 통행과 주차에 할당되어 있었고, 정작 실제 차량 분담률은 25%에 불과했다.

 

바르셀로나가 탄소중립 도시 재설계의 가장 중요한 실험장이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도시의 DNA를 부수지 않고, 원래의 격자 논리 안에서 — 즉, 물리적 구조를 새로 짓지 않고 재분배함으로써 — 근본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새 땅을 매립하지도, 외곽에 신도시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미 있는 길을 다시 그릴 뿐이다.

 

고밀도 구도심을 안고 있는 모든 도시에게, 바르셀로나의 실험은 예고편이다.

 


 

2. 무엇이 바뀌었나

 

슈퍼블록에서 녹색축으로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된 '슈퍼블록(Superilla)'은 3×3 블록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내부 통과 교통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광장·보행로·놀이터·화단을 배치하는 모델이다. 2016년 포블레누에서 첫 실험이 시작되었을 때, 도로 한가운데에 페인트로 그은 선과 플라스틱 방호벽이 전부였다. 그 조잡한 시작이 2020년대에 들어 돌과 나무로 된 영구 시설로 바뀌었고, 더 나아가 '슈퍼블록'이라는 점(點) 단위에서 '녹색축(Eixos Verds)'이라는 선(線) 단위로 개념이 진화했다. 에이샴플레 한복판을 관통하는 21개의 녹색축과 21개의 광장이 네트워크를 이루며 도시 전체의 체온을 낮추고 있다.

 

산트안토니(Sant Antoni) 슈퍼블록을 보자. 축구장 5개 면적(23,709㎡)이 사람의 공간으로 전환됐다. 콤테 보렐(Compte Borrell) 거리 위에 체스 테이블이 놓이고, 탁구대가 들어오고, 카페는 테라스를 길 위로 내밀었다. 한때 공업지대 — '카탈루냐의 맨체스터'로 불리던 포블레누(Poblenou)에서는 빌바오, 팔라르스, 야쿠나, 탕헤르 거리와 디아고날 대로 사이의 블록이 통째로 재편되었다. 에이샴플레의 지로나(Girona) 거리 녹색축 공사에서는 50년 넘게 아스팔트 아래 묻혀 있던 19세기 화강암 바닥돌과 트램 레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도시가 자신의 지층을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에너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에너지 전환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속도는 놀랍다. 2018년 설립된 100% 공공 재생 에너지 유틸리티 '바르셀로나 에네르기아(Barcelona Energia)'는 2023년부터 단 2년 만에 시립 시설의 태양광 용량을 3배로 늘렸다. 2025년 현재 268개 시립 시설에서 11,449kWp. 산 안토니 시장과 산츠 시장의 지붕, 론다 리토랄 고속도로의 방음벽까지 — 도시는 모든 유휴 수평면을 발전소로 전환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금융 구조다. **MES 바르셀로나(Mecanisme de Sostenibilitat Energètica)**는 시 예산 5,000만 유로를 마중물로 삼아 민간 투자 1억 6,600만 유로를 끌어들인 공공-민간 모델이다. 건물주에게는 초기 비용이 없다. 민간 투자자가 설치비 전액을 부담하고, 10년간 에너지 판매 수익으로 회수한 뒤 설비를 무상 이전한다. 고금리 시대에도 태양광 보급률이 66% 이상 솟아오른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바퀴의 혁명

TMB(바르셀로나 광역교통)는 이미 전체 버스 함대의 25%를 무배출 차량으로 채웠다. 202대의 전기 버스, 46대의 수소 버스. 2026년에는 BYD의 684kWh 대용량 굴절 전기 버스 19대가 추가된다. 기존 디젤 버스를 수소로 개조하는 HERO 프로젝트는 유럽이 처음 시도하는 자원순환형 전동화다.

 

자전거 공유 시스템 '비싱(Bicing)'은 이제 단순한 레저 수단이 아니다. 8,000대 중 5,000대가 전기 자전거이며, 전체 이용의 80%가 전기 자전거에서 발생한다. 경사가 심한 바르셀로나에서 전동화가 있었기에 자전거는 비로소 통근 수단이 됐다. 2025년 한 해 이용 건수는 2,000만 회에 이를 전망이다.

 

 


 

3. 시민은 어떻게 참여했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싫어했어요."

포블레누 슈퍼블록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주변 상인들은 "손님이 끊긴다"고 반발했다. 차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권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2~3년이 지나면서 포블레누 지역 상점은 30% 이상 증가했다. 차가 사라진 길에 사람이 머물기 시작했다. 머문 사람은 소비한다. 이 단순한 공식이 확인되자, 처음 반대하던 상인들은 옆 동네 주민이 되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도 슈퍼블록을 만들어달라."

 

산트안토니 주민인 30세 건축가 Jael은 이렇게 말한다. "여름에 할머니들이 잠옷 차림으로 거리 한가운데 나와 파스타를 드시는 걸 봤어요. 좁은 아파트에서 나와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그 대비가 너무 강렬했습니다." 공공 공간의 확장은 단순히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여름밤 에어컨이 없는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BATEC과 라 보르다 — 지붕 없는 사람에게 에너지 주권을

바르셀로나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서 가장 독특한 산물이 BATEC이다. 2021년 엔지니어링·건축 분야 협동조합들이 결성한 '에너지 전환 협동조합 허브'로, 직접 에너지를 파는 곳이 아니라 시민 주도의 지역 에너지 공동체를 설계하고 출범시키는 공작소에 가깝다. EU 자금과 시 보조금을 끌어오고, 태양광 공급업체를 섭외하고, 회원 계약 전환 문서를 만드는 행정·전략 업무가 BATEC의 역할이다.

 

BATEC이 출범시킨 대표적 사례가 라 보르다(La Borda) 주거 협동조합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를 중심으로 한 라 보르데타 에너지 공동체다. 모든 설비는 국가 전력망에 연결되지만, 에너지가 물리적으로 회원의 집까지 송전되지는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각 회원의 전기 요금에서 기여분만큼을 '가상 계산'으로 차감할 뿐이다.

 

참여 구조는 놀랍도록 저렴하다. 자본 투자 200유로로 0.5kW의 에너지 권한을 얻는다(탈퇴 시 환급). 개인이 태양광을 직접 설치하려면 최소 2,000유로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10분의 1의 문턱은 지붕 없는 세입자가 에너지 생산자가 되는 가장 낮은 입구다. 회원들은 전기 요금의 30~50%를 절감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입 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Bicibús — 금요일 아침의 혁명

매주 금요일 아침, 바르셀로나의 특정 거리에는 수십 대의 어린이 자전거가 줄지어 달린다. 부모들이 주도하는 어린이 통학 에스코트 '비시부스(Bicibús)'다. 형광조끼를 입은 어른들이 앞뒤를 호위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학교로 향한다. 시의원과 시장 후보까지 합류하는 이 행진은, 도시의 도로가 누구의 것인지를 매주 묻는 시민 주도의 시위이자 실천이다.

 

 

PAE — 에너지 빈곤을 막는 마지막 방파제

2017년부터 바르셀로나 시가 운영해 온 12개 '에너지 상담소(Punts d'Assessorament Energètic, PAE)'는 에너지 전환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게 지키는 장치다. 매월 약 2,500명에게 맞춤 상담을 제공하고, 600명 이상을 단전·단수 위기에서 법적으로 보호한다. 특히 장기 실업자를 에너지 상담사로 훈련해 고용하는 구조 — 참여자의 80%가 노동 시장 재진입에 성공했다 — 는 기후 정책이 사회 정책과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걸작이다.

 


 

5. 그늘도 있다

 

시장이 바뀌면, 도시가 흔들린다

2023년 5월, 10년간 바르셀로나 시장으로서 슈퍼블록을 밀어붙였던 아다 콜라우(Ada Colau)가 선거에서 패배했다. 새 시장 자우메 콜보니(Jaume Collboni)의 부시장 라이아 보네트(Laia Bonet)는 취임 직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비용과 공존의 문제로 슈퍼블록 모델의 확장은 불가능하다." 근거로 제시한 숫자는 명료했다. 슈퍼블록 1블록당 유지 관리비는 일반 도로의 10배에 달한다.

 

법원도 멈춰 세웠다

카탈루냐 고등법원(TSJC)은 에이샴플레의 상징적 사업인 콘세이 데 센트(Consell de Cent) 녹색축에 대해 도시계획 절차 위반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주도한 것은 바르셀로나 오베르타(Barcelona Oberta) — 대형 유통과 관광업계의 연합체였다. 관광버스가 들어오기 어려워지고, 트럭 물류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 공식 이유였다. 법리상으로는 절차적 문제였으나, 본질은 누구의 도시인가를 둘러싼 이익 충돌이었다.

 

 

주거비의 반격

녹색축이 지나간 거리는 매력적이다. 매력적인 거리에 사는 일은 비싸다. 2025년 바르셀로나의 주택 매매가는 전년 대비 9.4% 상승했고, 에이샴플레 ㎡당 가격은 6,210유로를 넘어섰다. 임대료는 지난 10년 사이 68% 폭등했다. 생태적 정의가 경제적 부정의로 귀결되는 현상 — '에코-젠트리피케이션' — 은 바르셀로나 모델이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그러나, 시민은 돌아서지 않았다

이 모든 그늘 속에서도 시민 지지율은 66.6%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10월, EU는 에이샴플레 녹색축 프로젝트에 '뉴 유럽 바우하우스 어워드' 1등을 수여했다. 흥미로운 반응이 이어졌다. 수상 소식 이후 시장은 침묵했고, 오히려 야당이 시의회에 "시상식을 공식적으로 개최하자"는 동의안을 제출했다. 도시의 성공을 도시가 축하하지 못하는 상황 — 이 역설은 정치의 풍향과 시민의 체감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정치는 흔들려도 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 아침의 비시부스는 계속되고, 콤테 보렐 거리의 할머니들은 여름이면 여전히 밖으로 나와 저녁을 드신다.

 

 


 

6. 한국에 적용한다면

 

서울과 바르셀로나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면적도, 인구 구조도, 법제도 다르다. 그러나 탄소중립 도시 재설계라는 과제 앞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흥미롭다.

지표 서울 바르셀로나
전력 자립률 8.9% 시립 태양광만 268개 시설 (지속 확장)
승용차 분담률 현재 18.4% → 2030 목표 10% 슈퍼블록 구역 내 사실상 통과교통 제거
2025년 보행환경 개선 9개소 슈퍼블록 20개 이상 + 녹색축 21개 + 광장 21개
에너지 공동체 제도 초기 단계 Batec 등 다수, 100유로 가입 구조
정책 경로 정부 설계 → 시민 수용 시민 요구 → 정부 추진

 

서울시 탄소중립 브리프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 진단한다: "자전거 도로 확대와 녹색교통지역 확대 같은 수요 관리 정책의 시민 수용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장이 서울과 바르셀로나의 결정적 차이를 드러낸다. 서울은 정부가 설계하고 시민이 수용하는 구조이고, 바르셀로나는 시민이 먼저 요구하고 정부가 뒤따르는 구조다.

 

이 차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내구성 문제다. 시민이 먼저 움직인 도시는 시장이 바뀌어도 거리가 후퇴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가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 실험의 결과다.

 

 

그렇다면 한국이 배울 것은 기술이나 설계도가 아니다.

첫째, 제도 설계의 순서다. MES 바르셀로나처럼 공공이 마중물을 던지고 민간과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구조 — 5,000만 유로로 1억 6,600만 유로를 끌어들인 레버리지 — 는 한국의 그린뉴딜 재정 구조와 정면으로 대비된다.

둘째, 가장 작은 단위의 중요성이다. Batec의 0.5kW, 200유로 구조는 '지붕 없는 사람'이 에너지 생산자가 되는 가장 낮은 문턱을 만들었다. 한국의 에너지 협동조합 논의는 이 문턱이 아직도 너무 높다.

셋째, 실패를 공개하는 용기다. 슈퍼블록의 유지비가 10배라는 사실을 시 정부가 스스로 밝혔다. 판결로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투명한 갈등의 공개가 역설적으로 시민 지지의 내구성을 만들었다.

 

 


 

7. 직접 간다면

리포트로 읽는 것과 길 위에서 걷는 것은 다르다.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공공·민간 관계자라면, 다음 네 장소는 한나절의 여정으로 충분히 돌 수 있다.

 

산트안토니 슈퍼블록 — 콤테 보렐(Compte Borrell) 거리. 지하철 L2 산트안토니(Sant Antoni) 역에서 내리면 바로 시작된다. 체스 테이블, 탁구대, 카페 테라스, 놀이터가 한 거리 위에 공존한다. 여름철 늦은 오후에 가는 것을 권한다. 도시의 체온이 어떻게 낮아지는지는 밤이 오기 전 그 시간에 가장 잘 보인다. 산 안토니 시장의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도 함께 볼 수 있다.

 

포블레누 슈퍼블록 — 빌바오, 팔라르스, 야쿠나, 탕헤르 거리와 디아고날 대로 사이. 지하철 L4 포블레누(Poblenou) 역. 구 공업지대 특유의 벽돌 공장 건물과 새로 들어선 광장이 섞여 있다. 콰트레 칸톤스(Quatre Cantons) 학교의 에너지 공동체는 예약을 통해 방문 가능한 경우가 있다.

 

에이샴플레 녹색축 — 지로나(Girona) 거리. 50년 넘게 아스팔트 아래 묻혀 있다가 2023년 복원된 19세기 화강암 바닥돌과 트램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간. 도시가 자신의 지층을 재발견한 현장을 가장 극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비시부스 — 금요일 아침. 현장에서 가장 흔치 않고 가장 강렬한 경험. 일정을 맞출 수 있다면, 에이샴플레 구역의 출발 지점 중 하나에 금요일 8시 반 이전에 도착해 끝까지 따라 걸어보길 권한다. 도시의 도로가 누구의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 아이들의 자전거 바퀴와 함께 굴러간다.

 

 


 

바르셀로나의 실험은 완성된 답이 아닙니다. 흔들리고, 걸려 넘어지고, 법원에서 멈춰 서는 중. 그러나 이 도시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아침 아이들의 자전거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길 위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종류의 증명입니다.

 


 

트래블시스템에서는 도시와 국가의 큰 아젠다를 위해, 유럽 현지의 기관방문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번 시리즈의 첫번째로 탄소 중립을 위한 유럽에서 실시한 모범사례를 확인하였습니다. 
다음편에는  한국의 중소도시가 모델로 삼아야 할 유럽 녹색 수도의 한 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다 나은 사회 발전의 일원이 되고자 우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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